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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영화 리뷰] 서브스턴스

by 한량두냥석냥 2025. 1. 6.

 

<서브스턴스> 포스터

 

  새해가 되었지만, 새해 계획이라든가 다짐은 세우지 않았다. 못했다... 가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추진하면서 스스로를 변혁해나갈 의지, 그런 게 없었다. 지금하고 있는 것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인가?

  그렇게 무상하게 새해를 맞이하고서, 우연히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가 이영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겠으면 진짜 죽어도 못한다고 생각했던 걸 해보라고, 자신의 삶이 그렇게 변했다고.

  그래서 이 영화를 보러갔다. 굳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뭔가 새로운 걸 '실행'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상이 너무나 평온한 나머지 관성에 푹 절어있었기에 적당한 충격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죽어도 안볼 것 같은 '스릴러', '고어물' 영화를 보기. 획기적이고, 어딘가모르게 2025년스럽고, '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라는 영화의 소개 문구마저 그럴싸했다.

  그래도 영화관에 가기 전 지하철 안에서 실관람객들의 후기를 보기는 봤다. 어떤 사람은 악의적이게도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연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고, 누군가는 영화를 보기 전에 밥을 먹지 말고, 팝콘도 사지말라고 당부했다. 다 토하고 싶을 거라면서. 마지막 30분에 펼쳐지는 토마토 축제를 언급하며 그 부분은 정말 봐주기 힘들었다는 평도 있었다. 그런데도 영화관에 갔다. 이것은 내게 25년의 새로운 도약이될 것이라며.

  영화는 무척이나 영화스러웠다. 영상이 너무 깔끔하고 비비드한 컬러로 덧칠되어진 느낌이랄까.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프레임이며 상징이며 영상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라기보다는 영화스러운 느낌이 가득했다. 자극적인 내용이어서였을까? 참신한 이야기와 섬뜩하고 징그러운 고어함을 이겨내며 스토리에 빠져들만큼 초반부 그리고 중반부로 끌어가는 엄청난 파워가 있었다. 세포와 신체의 분열 과정이라해야하나... 요란한 빛의 현란과 극도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들은 진짜로 보는 내가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런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올 때마다 진짜 정신이라도 잃을까 무서워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제발, 적당히 해…' 중간 중간에 긴장이 풀리는 웃긴 장면들도 있었다. 부작용때문에 폭삭 늙어버린 엘리자베스가 삐걱거리던 몸으로 갑자기 계단을 미친듯이 빨리 내려간다든지 하는 어이없는 장면들.

  사람들이 말한대로 수작인듯 싶으면서도 마지막 부분이 B급 같기도 하고, 이만큼이나 강렬하고 징그럽고 무섭게 주제를 얘기하는 영화라니 감탄스럽기도 하고, 끝날 때까지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소 안봤던 고어한 영화를 본대서 삶이 뭐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깨달음도 얻었고.

  아직 내가 젊기 때문일까? 아직 늙지 않아서? 아니면 지금껏 젊음과 아름다움에 엄청난 집착을 일으킬만큼 좋은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미디어나 사회가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이용하며 빈껍데끼처럼 아름답게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인이 박혀서? 그건 잘 모르겠지만, 영화의 고어함을 뺀다면 그리 특별한 교훈을 담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엘리자베수의 피로 관객을 물들여버리는 B급 영화같은 장면에서 모종의 통쾌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나이가 들었을지라도 내 눈에 데미 무어는 아름답기만 했다. 그러니까 진짜 아름다움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들 정도의 황홀한 찬사와 사랑들에 중독되어버린 것. 그래서 그것을 상실했을 때의 박탈감이 너무 지나치게 깊었던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연예인이자 배우라는 직업 설정은 엘리자베스의 행동들에 적잖은 정당성을 주는 것 같다. 더불어서 '207'번 사물함을 이용했던 그 할아버지의 직업이 의료진이었다는 것도 조금 곱씹어보게 되었다.

  잔인한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당혹감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듯이. 크레딧이 올라가고 객석에 불이 켜지자마자 다른 관객들은 헛웃음을 짓거나 '뭐야, 이게?'라든가, '마지막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가 뭘본 건지도 모르겠다'면서 웃는다거나하면서 소란스러웠다. 영화가 끝나고 이렇게까지 객석이 술렁거리는 것도 오랜만에 봤다. <위플래시> 끝나고 박수쳤던 아저씨 이후에... 나도 사람들도 너무 충격을 받아서 웃겼던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후덜거리는 심장을 감추기 위해서 정신없이 말을 쏟아낸 것이거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대체 이 후덜림을 뭘로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인지 다급하게 찾으며 마음이 안정될만한 음악을 찾아 들었다.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조를 찍고 천천히 내려왔다.

  그래도 안하던 짓을 해봐서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잔인하다는 영상물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잔인할 것 같아서 안봤는데, 이제 그쯤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즌2도 나왔다니까 한번 봐볼까? 뭘해도 <서브스턴스>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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