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영화 리뷰] 작은 아씨들

한량두냥석냥 2021. 4. 11. 20:57

youtu.be/QeppL3TPr9o

유투브 영화: 작은 아씨들

  세비지 그레이스 보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다른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전부터 보라고 추천을 많이 받았었는데 영화관에서 볼 기회를 놓쳤던 작은 아씨들을 골랐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왓챠파이기 때문에 계속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차피 볼 영화를 자꾸 미루지 말자 싶어서 그냥 유투브 영화로 대여 결제했다. SD 대여로 1800원이었다. 48시간 빌려준다. 이틀 안에 1회 밖에는 못보겠지만 한 번 봐도 여운이 상당하다.

  중딩 때인가 고딩 때인가 영어 공부용으로 작은 아씨들 원서를 샀고 무료 mp3 파일 다운 받아서 계속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번역본으로는 보지 않았다. 뒤에 번역도 되어있는 원서였는데 왜 안봤을까. 그때는 그저 입시 준비하느라 바빴겠지.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고전이니까... 기억에 남을만큼 좋아했던 부분은 책이 가득한 로리네 서재에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된 조가 기뻐하는 부분이었다. 근데 그레타 거윅이 왜? 이토록 오래된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기로 했을까 싶었는데 영화를 보면 이해가 된다. 주체적으로 자기 길을 개척해가는 인물을 그려내기에 여성에게 제약이 심했던 옛날 미국 배경이 적합하기도 했을 것이고 조라는 인물은 시간이 흘러도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였으니까.

  감독이 연출에 상당히 신경썼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이 배경이고 인간이 인간인지라 조 역시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너무 외롭다고 말하면서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는 모습이라든지,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몹시 반가워하는 모습이라든지 등...) 극중 메릴 스트립이 말하듯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고 솔직한 모습이라서 설득력 있었다.

  조의 아름다운 점은 무엇이 되었든 자신만을 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나누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물려받은 유산으로 학교를 만들기로 하고, 인세를 두고 협상할 때에도 절대 판권을 팔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그것에 대해 물러섬도 주저함도 없는 모습이 멋졌다. 영화든 현실이든 저작권을 팔라고 하거나 넘기라고 하는 출판사의 비행을 보면 너무 속이 터졌는데 여기선 다행히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서 참 마음이 편했다. (영화 콜레트에서 남편이 무임으로 가져서 출판사에 넘겨버린 판권을 되찾느라 주인공이 재판을 여러 번 했던 사실이 생각나서 더...)

 

영화에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쓰는 조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밤낮으로 쓰고 또 쓰는 조 마치

  정은 언니가 특히 이 영화를 여러 번 추천했는데, 그 이유인즉 영화의 조가 베스를 위해 글을 썼던 것처럼 언니를 위해 글을 써달라고 나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언니를 위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정말 누군가를 위해서 쓸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언니를 위한 산문'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 정도 에세이를 써서 언니에게 보여주었다. 언니는 정말 좋아해주었고 계속 써 달라고 했다. 하지만 부탁에 응해주지 못했다. 나는 성실한 편이 아니었고 애초에 누굴 위해 뭔가를 하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럴 수 없었던 건,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너무 많이 말하고 싶었다. 나의 감정을 토로하고 울면서 이야기 하고 싶기도 했고, 즐거운 추억을 윤색을 거쳐 반짝반짝하게 떠올리면서 함께 웃고 싶기도 했다. 왜 못그랬는가 생각해보면, 나를 믿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것이 근거 있는 생각이 아닌 감정이라면, 그 감정은 너무 주관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마구잡이로 휘갈겨 놓는 게 부끄러웠다. 멋쩍었다. 쓰고 나면 그렇게까지 깊은 강도의 감정을 느낄만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했고 글이 만들어 놓은 작자의 모습과 내가 너무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쓰고 싶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이해받고 싶지도 않았다. 더불어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럴 가치가 없다고 냉정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주 팔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지 못할 때마다, 한 줄 한 줄을 넘기는데 너무 많이 주저하고 주저 앉을 때마다 나무의 성질이 부족한 내 사주가 떠오른다. 대체로 목(나무)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이 창작에 능하여 창의적인 면이 뛰어나다고 한다. 내 사주에는 목(나무 성질)이 전혀 없다. 그런 건 상관없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나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창작의 능력과 관계없이 조금 슬픈 일이었는데, 글을 못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그 없는 나무들이 생각난다. 없는 나무들. 그리고 불모의 땅. 나무가 없는 대신 나는 흙과 금과 물이 있는데. 물에 쓸려나가고 금속성이 많은 척박한 땅, 불모지가 떠오르곤 한다. 사막의 갈라진 땅.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땅.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할때마다 어쩌면 내가 너무나 사랑받고 있지만 그 사랑을 느낄 감각이 없는 비극적인 인간은 아닐까 싶다.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존재하는데도 쓰지 않는다니. 자신만의 생각 속에 갇혀서 사주 팔자 운운하며 스스로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도 쓰고 싶다. 조 마치처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작가로서의 자신과 작품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의 즐거움과 슬픔을 이야기로 나누면서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원하는 것은 마음 속에 단단한 나무를 기르는 일이다. 느리더라도 언니를 위한 산문을 계속 써야겠다.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모두 하겠다. 그것이 정말 사랑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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